칼럼 승려 구카이公海(774∼835)와 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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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5-03-09 21:21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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승려 구카이公海(774∼835)와 차
(사진 정유경 차문화연구가)
당나라에 유학한 구카이가 중국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왔다는 기록은 『홍법대사연보弘法大師年譜』에 나온다. 『홍법대사연보』에 홍법대사 구카이가 806년 중국에서 진언종眞言宗과 차 종자와 돌절구를 가지고 귀국했다는 기록과 함께 나가사키長崎에 차 종자를 심었다고 한다.
그 후 사이초와 구카이는 긴키近畿(일본의 본주 중서부를 말한다) 지방을 중심으로 차나무를 심었으며, 이들에 의해 천태종과 진언종이 차 문화와 함께 귀족사회로 전파되어 나갔다고 한다. 하지만, 『홍법대사연보』는 19세기에 학령화상學靈和尙이 편찬한 것으로 시대가 구카이가 활약한 시기와 너무나 동떨어져 이것 또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들다.
에이추·사이초·구카이 등 입당 구법승들이 실제로 차나무 혹은 완성품으로서의 일본에 차를 전래했다는 기록은 정확하지는 않지만, 그들이 차를 전래했다는 전승은 남아있다.
하지만 이들이 중국에 오랫동안 체류하였고 체류 중에 충분히 차 문화를 경험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. 따라서 그들이 귀국할 때 중국에서 차와 도구를 가져갔고, 중국에서 익힌 차 문화를 일본에 전하고 즐겼다고 할 수 있다.
만약 그 당시 일본에 차가 자생하고 있었다면, 그들은 중국에서 익힌 차에 대한 지식으로 차밭을 조성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.(글 다감당)
(구카이 화상 불릉사 소장)